중년여성 급격한 호르몬 감소

뇌 기능에 일시적 영향 미쳐

폐경 끝나면 다시 호전 많아


올해 55세로 전직 교장이었던 여성 환자에게 지난 1년 사이 ‘진행성 기억력 감퇴’(Progressive Memory Loss)와 행동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환자는 ‘전두 측두엽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가 의심돼 신경과 전문의인 게이야트리 데비 박사를 소개받았다. 데비 박사가 의학 저널 ‘산부인과학’(Obsterics & Gynecology)에 환자의 증상을 주제로 게재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던 환자의 기억력이 심각하게 손상돼 업무 처리, 소지품 관리, 목표 수립, 계획 수립 등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뇌 사진 촬영을 통한 진단결과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가 약 1년 전에 폐경기가 시작됐다는 사실에 주목한 데비 박사는 환자의 증상을 뇌의 에스트로겐 자극 감소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정밀 진단에 들어갔다. 폐경기를 거치는 거의 모든 여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감소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로 인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일부 여성은 급격한 에스트로겐 감소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폐경이 인지 기능 장애의 원인으로 판단한 데비 박사는 환자에게 호르몬 대체 요법을 처방했다.

15개월간의 치료 끝에 환자의 행동, 학습 능력, 기억력 등이 정상으로 회복됐다. 데비 박사는 “해당 환자는 극히 드문 사례에 포함되지만 약 60%의 여성은 폐경과 연관된 인지 기능 장애 증상을 겪는다”라며 “치매 전조증상인 ‘경도 인지 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로 잘못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폐경으로 인한 인지 기능 장애 증상은 여성의 유방암, 남성의 전립선암 치료 뒤 발생하는 ‘화학 뇌’(Chemo Brain) 증상과도 유사하다. 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고 이로 인해 머릿속에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이 뿌예지는 증상이 나타는 데 이 같은 증상을 ‘브레인 포그’(Brain Fog)라고도 부른다. 단기 기억력, 다중 작업 능력, 단어 기억력 감퇴와 설득력 부족과 같은 증상이 브레인 포그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데비 박사는 “40, 50대 중장년층 여성에게 폐경으로 인한 인지 기능 장애 현상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라며 “치매를 의심한 환자들이 기억장애 치료 전문가나 내과 전문의를 찾을 경우 갑상샘 관련 질환, 비타민 결핍, 기타 감염에 의한 진단을 받기 쉽고 폐경과 연관 짓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시카고 일리노이 주립대 정신 의학 및 심리학과 폴린 M. 마키 교수는 “갱년기를 거치는 여성들은 인지 기능 장애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표준 신경심리검사에서도 낮은 수준을 기록한다”라며 “특히 단어 기억력, 집행 기능, 처리 속도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보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 중에서도 브레인 포그 증상의 원인을 갱년기 여성이 흔히 겪는 안면 홍조, 식은땀에 의한 수면 장애를 원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인지 기능 장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라고 마키 교수가 지적했다. 

중년 여성 약 1,903명을 대상으로 약 6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에서도 폐경으로 인한 우울증, 불안감, 수면 장애, 안면 홍조와 같은 증상이 기억력 및 학습 능력 장애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마키 박사는 “폐경기를 거치는 여성의 뇌가 에스트로겐 수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인지 능력과 감정 상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여성도 월경 시작 전 에스트로겐 수치가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 월경 주기와 달리 폐경기는 서서히 진행될 뿐만 아니라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기 때문에 인지 기능 장애의 원인으로 잘 지목되지 않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나이가 45세가 되면 에스트로겐 수치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일부 50세 이후까지도 폐경이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UCLA 데이빗 게펜 의과대학 노인병학 및 여성 건강학과 게일 A. 그린데일 박사는 “폐경기 여성에게 나타나는 뇌 기능 및 감정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폐경 후 여성의 뇌는 낮아진 에스트로겐 수치에 적응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린데일 박사가 약 2,362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약 4년간 진행한 연구에서 폐경기를 거치는 동안 낮아진 기억력과 학습 능력은 폐경기 이후 다시 개선된 것으로 밝혀졌다. 

마키 박사는 폐경기 증상 치료를 원한다면 호르몬 대체 요법 외에도 지중해식 식단과 빠르게 걷기 운동, 알콜 섭취 줄이기 등을 권장했다. 폐경 후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에서 50세부터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한 여성들의 향후 18년간 알츠하이머로 인한 사망률을 포함, 전반적인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북미 폐경학회’(North American Menopause Society)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비호르몬 치료법도 안면 홍조, 인지 기능 장애 등 폐경기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호르몬 치료법으로는 항우울제 ‘팍실’(Paxil) 저용량 복용, 항경련제와 진통제 처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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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여성의 머릿속이 흐릿해지는 이른바 ‘브레인 포그’ 증상은 폐경에 따른 호르몬 감소가 원인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뇌 사진 촬영으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