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파타고니아는(Patagonia)는 ‘세상의 끝’이라는 수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땅이다. 일찍이 찰스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셰익스피어, 조나단 스위프트, 생텍쥐베리는 이곳에서 각각 <템페스트> <걸리버 여행기> <야간 비행>의 영감을 얻었다.

파타고니아란 ‘거인들의 땅’이란 뜻으로 당시 원주민이었던 테우엘체족에서 유래했다. 여행 적기는 11~2월. 남반구의 여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파타고니아를 찾으면 야생화가 지천으로 펴 있고 날씨도 비교적 온화하다.

여행가들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3시간쯤 날아 산티아고 남쪽 약 2,200km에 위치한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 항구에 도착한다. 빙하와 바람, 대자연의 무언극이 펼쳐지는 파타고니아 여행이 지금 시작된다.


대자연의 감동, 토레스 델 파이네

남미에 와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Torres del Paine)을 보지 않으면 남미를 제대로 여행한 것이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야말로 전 지구상에서 태고의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아닐까 싶다(실제로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다양성 보존지역이다). 아직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청정한 지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빙하가 녹은 물은 쪽빛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호수와 맑은 강물로 흘러들어가 폭포를 타고 흐른다. 마지막 희망처럼 남은 대자연을 터전 삼아 캥거루, 사슴, 은빛 여우, 퓨마, 구아나코(남미 낙타의 일종), 흰머리 독수리, 홍학 등이 살고 있다.

대부분 걷기 편한 평지로 이루어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남미를 대표하는 트레킹 코스인 ‘W-Trek’이다(약 80km). 지도상으로 알파벳 W 모양을 하고 있는 이곳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내에서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살아숨쉬는 모레노 빙하

로스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총 4459km²)은 198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크고 작은 47개 빙하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가장 크다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길이 35km, 폭 5km, 높이 60~80m)가 이곳의 명물이다.

거대한 모레노 빙하는 안데스 산 속 칠레 국경까지 뻗어있다. 실제로 가 보면 상상하던 빙하지대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그리 춥지 않은데다가 빙하 옆으론 푸른 숲과 꽃, 나무들이 공생하고 있다. 녹는 눈의 속도보다 내리는 눈의 양이 엄청난 두께로 쌓이고 중력에 의해 낮은 곳과 바깥쪽으로 밀려 이동한 것이 모레노 빙하다.

배를 타고 15분쯤 달리면 푸른빛을 띤 빙산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묘한 옥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상류에서 밀려오는 압력과 빙하의 광물질로 인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데 진할수록 더 오래되고 단단한 빙하다. 

때때로 ‘우르르쾅쾅’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들린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봤던, 끝없이 늘어선 빙하가 일제히 무너져 내리는 장관이 눈앞에서 연출된다. 덩달아 사람들의 탄성도 터져 나온다.

이곳에서는 아이젠을 신고 미니 빙하트래킹도 즐겨볼 수 있다(10세 미만·65세 이상은 Safari Nautico 유람선으로 대체). 수 천년동안 눈이 내리고 쌓이기를 반복해서 얻어진 빙하를 아이젠을 칭칭 감고 오르는 것이다. 제법 무거운 아이젠은 미끄러짐을 방지하면서 이 얼음산을 걷게 한다. 줄을 서서 가이드 뒤를 따르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마치 남극의 펭귄 떼들을 연상시킨다. 얼음산을 걸어 보니 펭귄들이 왜 그리 뒤뚱거리며 걷게 되었는지 알 만도 하다.

빙하트래킹 중간에는 크고 작은 크레바스들 사이에 고여있는 청량한 빙하수로 목을 축여본다. 트래킹이 끝나는 지점에는 빙하 얼음조각을 동동 띄운 위스키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찌릿찌릿!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땅끝마을 우수아이아

모레노 빙하의 신비를 간직한 채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항구도시 우수아이아(Ushuaia)로 향한다.  이름조차 쓸쓸한 우수아이아는 ‘Fin del Mundo’, 즉 ‘세상의 끝’이다. 땅끝이라고는 하지만 설산들에 둘러싸여 포근한 호수마을처럼 보인다.

남극을 오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의 큰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핀델 문도(The End of the World)’! 엄밀히 말해 땅끝은 아니겠지만, 남극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남위 55도, 최남단의 땅이다. 

이곳에서는 여권에 땅끝마을 스탬프도 받을 수 있고 땅끝 마을 소인이 찍힌 엽서를 사서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볼 수도 있다. 와인에 곁들이는 우수아이아 털게 요리도 별미 중의 별미다.

또 하나!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국립공원 내부를 달리는 관광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우수아이아 교도소의 난방용 목재를 운송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지난 1904년 운행을 시작했다. 1949년 지진으로 운행이 중단 되었으나 1994년 관광상품으로 재개발돼 하루 20회 운행하고 있다. 만년설과 빙하, 호수와 원시림 사이를 칙칙폭폭 증기를 뿜으며 기적을 울리는 기차는 야생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진 계곡과 삼림사이를 달린다. 차창에 비친 풍광을 보며 태초의 지구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남미의 스위스 바릴로체

정식 이름은 산 카를루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riloche).

이 작은 마을은 한눈에도 스위스를 빼닮았다. 물감을 쏟아 놓은 듯한 하늘 아래 알프스의 품에 안긴 스위스와 안데스의 품에 안긴 바릴로체! 마을 너머로 크고 작은 호수가 하늘을 담고 그 호수 너머에 우뚝 선 산맥에 그림 같은 빙하가 솟아 있는 곳. 대자연의 품에 안긴 소박한 마을에서의 삶의 달콤함을 일깨워 주는 초콜릿까지!

바릴로체는 의아할 정도로 스위스와 비슷한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서부터 벗어난 후, 스위스와 독일 이민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며 집단 거주지인 콜로니(Colony)를 형성한 것이다. 이후 남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휴양지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됐다.  

바릴로체 거리에는 유럽풍 낮은 집들이 들어섰고 호수 밑 산기슭 곳곳에는 스위스 건축양식인 샬레(Chalets) 가 세워졌다. ‘산 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바릴로체’ 역시 알프스 산맥에서 살다 온 스위스 이민자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볼거리도 풍부하다. 쎄로 오또(Cerro otto)에는 바릴로체의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높이 1,405m까지 4인용 케이블카를 통해 편히 올라갈 수 있다. 바릴로체에서 가장 높은 산은 쎄로 뜨로나도르(CERRO TRONADOR·해발 3491m)로 활화산과 검은 빙하가 유명하다. 깔라파떼의 푸른 빙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빙하를 관찰할 수 있어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높은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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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토 모레노 빙하의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고 경이로운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