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착하듯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지중해의 항구도시 텔 아비브(Tel Aviv)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잠시 오르막을 오르는가 싶더니 한참 내리막길을 달려 성지 예루살렘(Jerusalem)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 수많은 이적들, 죽음과 부활이 펼쳐진 땅…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릴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심장부이며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이다. 창세기 이후 아브라함이 정착한 땅에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건립하면서 예루살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빌론 유수를 겪고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철저히 파괴되어 유대민족은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이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십자군 전쟁으로 잠시 회복되기는 했지만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로 근대까지 이르게 된다. 세계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경험한 유대인들은 1948년 마침내 유대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다. 그후 4차례의 중동전쟁을 겪으며 지금의 이스라엘로 자리매김했다.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의 유대성전이 있었기에 유대교의 성지가 되고, 무함마드가 승천한 바위가 있어 지금의 황금돔 사원이 있는 이슬람의 성지이며, 예수가 태어나 못 박혀 죽은 곳이기에 기독교의 성지이다.


▲갈릴리(Galilee) 

갈릴리는 이스라엘 최대 호수 이름이다. 동시에 시리아·레바논·요르단과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가 성장하고 열두 제자와 함께 활동한 곳이어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성지순례지로 통한다. 높은 곳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 둥그스름한데 그 모양이 마치 다윗왕이 즐겨 연주하던 수금(히브리어로 키노르)을 빼닮았다. 그래서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갈릴리 호수의 이름을 키네렛(Kinneret)호수라고 했나 보다.

마주한 갈릴리 호수는 예수가 성령의 힘으로 온갖 능력을 내보인 곳이자, 부활한 이후 첫 번째로 찾은 곳이다.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하게” 된 바로 그 갈릴리 호수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만나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었고, 야고보와 요한 등도 제자로 삼고 키웠다.

오병이어교회 제단 앞 바닥에는 오병이어가 모자이크화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갈릴리호 주변에는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를 찾아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한 ‘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있으며, 유대 회당에서 설교를 한 가버나움과도 가깝다. 

▲사해(Dead Sea)

북쪽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내려온 요르단강이 더이상 흐르지 못한 채 갇힌 사해는 해발 약 -400m로 해발 790m인 예루살렘과는 고도차가 약 1200m나 된다. 남북 길이 75㎞, 둘레가 200㎞에 이르는 사해는 염도가 바닷물의 10배나 돼 물에 눕기만 해도 그냥 몸이 둥둥 뜬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바다 위에 편안하게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게다가 사해의 물과 진흙에는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머드팩을 하면 관절염 등에 좋다고 한다. 

▲베들레헴(Bethlehem)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히브리어로 집을 의미하는 베트(Beth)와 빵을 의미하는 레헴(Lehem)에서 유래했다. 어원이 ‘빵집’일만큼 풍요로운 곳이다.  

베들레헴 동쪽으로 2㎞ 떨어진 한 언덕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하나 있다. 그 아래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만한 구멍이 있다. 오래전 들판에서 양떼를 모는 목자들이 사용하던 자연동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준 천사의 음성을 들은 곳으로 전해진다.

‘예수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가 태어난 장소로 알려진 이곳을 326년 방문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웠던 아도니스 신전을 허물고 세운 교회다.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본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겸손의 문’ ‘작은 문’으로 불리는 120m 가량의 작은 돌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단을 따라 제단 밑으로 내려가면 14개 꼭지점을 가진 은색별 문양이 바닥에 콕 박혀 있다.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표시해둔 것이다. 

드디어 성지순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향할 차례다. 슬픔의 길이자, 고난의 길이다.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십자가 수난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묵상하게 된다. 십자가를 진 지점부터는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된다. 골고다 언덕에 오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성묘 교회’(예수 무덤이 안치돼 있다), 예수가 죽고 다시금 부활했다는 ‘예수승천교회’에도 닿는다.

▲페트라(Petra)

그 옛날 이집트에서 모세가 자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맨 처음 요르단으로 들어온 곳이 요르단(Jordan)의 페트라 지역이었다.  

요르단의 자랑인 페트라 유적은 실로 눈이 부실만큼 경이롭다. 수많은 건축물 가운데 단연 최고는 장밋빛 사암을 깎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알 카즈네’다. 시크(Siq)라 불리는 붉은 협곡 사이를 지나면 느닷없이 알 카즈네 신전이 출연한다. 기원전 100년께 건축된 알 카즈네의 아름다움 앞에 누구나 잠시 숨을 고르고 만다. 신전에서 더 들어가면 로마시대 원형극장과 목욕탕, 극장, 장터, 무덤 및 주거지 등이 나온다.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모세의 건천’이란 뜻의 와디 무사다. 기원전 14세기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이곳에서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전해온다. 물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든 와디 무사(Wadi Musa)이지만 ‘모세의 우물’로 통하는 이 샘에서만큼은 지금도 맑은 샘물이 솟아나 모세의 기적을 증거한다.  

해발 817m의 느보산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는 고난의 출애굽 과정을 마무리하는 기착지였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고 신명기에 기록되었다. 

성지순례를 통해 우리는 성경 속의 말씀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느낄 수 있다. 말씀의 참뜻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거듭되는 회개를 통해 영적인 성숙을 이뤄내는 여정이다. 예수의 흔적을 찾아 다녔던 길을 되뇌어본다. 중년 혹은 노년을 맞이한 나이에도 순례객들은 새삼스럽게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고백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 땅에 예수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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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 곳곳이 성서의 무대이자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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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에 마련된 제단 모습. 예수 탄생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 은색 별 문양이 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