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실종 7,600여명 중 가주 출신 약 600명

하원, 송환비용 1천만달러 배정 예산안 통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미군유해 송환이 늦어도 다음 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8일 연방 하원을 통과한 예산안에는 차질 없는 진행을 위한 송환비용 1,000만 달러도 배정되었다. 지난주 미 당국은 유해를 북한에서 넘겨받는 데 쓰일 나무상자 100여개를 판문점으로 이송했는데 북한에서 유해를 나무상자에 넣어 남쪽으로 반입한 뒤, 오산기지에서 한 구씩 관에 넣는 작업을 마친 뒤 유해송환 의식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는 하와이로 옮겨져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의 감식 검사를 거친 후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60여년 긴 세월 끝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유가족들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 “이번엔 정말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육군 대위였던 아버지 새뮤얼 백스터 3세가 한국전쟁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남가주 글렌도라 집을 떠났을 때 브리짓 백스터 오티즈는 겨우 4살짜리 어린 소녀였다.

아버진 한국전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2차 대전 전투기조종사로 참전해 독일에 전쟁포로로 억류되기도 했던 30세의 백스터 대위는 1951년 11월 한국전에서 격추당한 것이다.

그는 3년의 한국전 중 유해가 실종된 7,600여명의 미군 중 한명으로 기록되었다. 군 기록에 의하면 그중 캘리포니아 출신은 약 600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제, 6월12일 미북 정상회담 결과, 북한은 약 200구의 유해를 송환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백스터 대위의 두 자녀는 아버지를 거의 알지 못하지만 60여 년 동안 아버지를 기억하며 언젠가는 그의 유해가 집으로 돌아올 것을 기다려 왔다.

“아버진 늘 내 마음 속에,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다”고 테메큘라에 거주하는 오티즈는 말한다.

이번 송환될 유해 중 백스터 대위가 포함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공군 보고서에 의하면 백스터가 마지막 정찰 비행을 떠난 것은 1951년 11월14일 오전 6시30분 남한의 평택에서. 그는 ‘수퍼맨 1’이란 파일럿 호출부호로 단발 LT-6D 정찰기를 몰고 임무에 나섰다. 약 90분 후 적진 항공을 날던 백스터의 소형 정찰기는 동쪽으로 급강하했고 지상으로부터 기관총 포격을 받은 정찰기는 화염에 휩싸이며 격추되었다고 군 기록은 밝히고 있다.

아무도 낙하산은 보지 못했고 다른 조종사들은 떨어져 나간 날개가 불에 타고 있는 등 심하게 파손된 기체만 보았을 뿐이다. 당시 함께 전사한 해럴드 비지나 소령의 유해도 발견하지 못했다.

가족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백스터 대위는 금발에 친절한 사람이었고 시트러스 칼리지를 잠시 다녔으며 2차 대전 중 입대했다.

아버지 백스터 대위가 격추당한 후 어머니는 사진들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딸 브리짓과 아들 샘 백스터 4세, 손자 샘 백스터 5세 등 자녀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71세의 브리짓 오티즈는 비 오는 밤 멋진 대위 모자를 쓴 아버지가 운전하던 군용 지프 뒷좌석에 탔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그날 아버지의 옆모습이 실제의 내 기억 속에 있는 전부“라고 백스터 대위 전사의 비극을 단면적으로 표현했다.

1952년 공군 중위 핼 다운스의 B-26 전폭기가 북한 상공을 날다 격추당한 것도 한 밤중이었다. 그는 추락 후 전사했을까? 잡혔을까? 그 대답을 가족들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올 것만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운스 일가도 북한으로부터의 미군유해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백스터 일가를 비롯한 수 천 명 한국전 참전 실종 군인들 유가족의 일원이다. 

아버지의 전폭기가 격추당했을 때 3살 아기였던 리처드 다운스는 이제 69세로 한국전 전쟁포로 및 실종군인 유가족연합의 화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가족들에게 무언가 확실한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 몇 년 동안 양국 정부와 협상도 해왔다.

2016년 전 뉴멕시코 주지사 빌 리처드슨이 이끄는 협상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던 다운스는 이젠 희망을 갖기도 조심스럽다면서 “우린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LA타임스·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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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14일 판문점을 통해 미군 유해가 송환되던 장면. 지난주 한국 내 언론들은 미 당국이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215개의 관을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