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 일만 하기는 싫어” 커리어에 변화 모색
  동물 돌보기·학교 등록·여행·친구 만나기 다양
  기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비용 부담도 적어
  지친 삶에 활력 주고 은퇴 후 인생설계에 도움


갭이어(Gap year)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청소년들이 입학을 미루고 타지로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갭이어가 요즘은 일에 지친 중년이나 은퇴를 앞둔 노년층에게도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특별한 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닥터 데니스 시날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의 위장병학 교수인데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연구 논문을 쓰던 중 갑자기 “더 이상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때가 10년 전, 그의 나이 59세 때였다. 
시날은 안식년을 가질 수 있을지 알아보았으나 대학에서 제공하는 안식년은 그 기간 동안 일과 관련된 경험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바로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갭이어 어드벤처를 알선해주는 회사들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됐다. 물론 고교 졸업생과 대학생들이 주 고객인 비즈니스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중 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해서 닥터 시날은 알래스카에서 석공을 배우는 서머 도제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아내와 함께 낡은 집을 개조하여 판매하는 일도 하고 있었던 터라 석수 일은 배워두면 언제고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했다.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그는 집의 외벽에 돌 붙이는 일을 배우며 실습했다. 적당한 크기의 돌을 필요한 공간에 잘 맞게 붙이는 일이었다. 마치 커다란 직소 퍼즐 맞추기와 비슷한 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닥터 시날처럼 여유시간과 재정 능력이 뒷받침되는 중년 혹은 은퇴 연령의 미국인들에게 갭이어는 삶의 활력을 재충전하거나 은퇴 후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커리어의 변화를 모색하는 장년과 노년층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기간이 꼭 일년일 필요도 없고 그보다 짧거나 길어도 괜찮다. 또한 비용 면에서도 부담되지 않는 경험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뉴저지 주의 센터 포 인터림 프로그램의 홀리 불 회장은 말했다. 그는 닥터 시날의 갭 이어를 알선한 사람이다. 
“주로 학생들을 상대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은 완전히 은퇴하지 않은 장년들도 점점 많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어떤 기점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자문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이죠” 
갭 경험은 여행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다시 등록하기도 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갖기도 하며, 잊었던 열정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고 ‘인생을 리부트하라’(Reboot Your Life: Energize Your Career & Life by Taking a Break)의 저자 캐더린 앨런은 말한다. 즉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가 같은 위치에 복직하게 놔두는 업주는 거의 없기 때문에 갭이어는 사실상 커리어와 은퇴 사이의 갭이라고 볼 수 있다. 인적자원경영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무급 안식년 휴가를 주는 회사는 12%, 유급 안식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은 4%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갭이어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닥터 시날은 돌아와서 같은 자리에 복직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석공 일을 배우고 난 뒤 네팔의 카트만두로 날아가 티벳과 아유르베다 의술을 배우는 인턴십을 경험했다. 그곳의 동종요법을 서양의술에 적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루마니아로 가서 오래된 성을 복원하는 고고학자들 팀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펜실베니아의 골동품 가구 복원의 장인에게서 도제 훈련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자기 일에서 떠나 다양한 경험을 가졌던 닥터 시날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가 5년 후 은퇴했다.
이 갭이어 경험이 자신의 은퇴 후의 삶을 결정했다고 시날은 말했다. “그 전에 나는 좌뇌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우뇌 성향이라고 느낀다”는 그는 취미로 소설 쓰기를 하던 것이 은퇴 후 만개해 벌써 2권의 단편소설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큰 결실을 맺었다. “이 정도까지 삶이 달라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 대학에서 제공한 무급 휴직으로 갭이어를 가질 수 있었던 닥터 시날은 그 기간 동안 1만달러를 썼다. 그러나 결코 아깝지 않았다는 그는 인생을 바꿔놓은 경험에 어떻게 값을 매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캐슬린 배스킨은 작년 여름 자녀들이 떠나고 55세가 됐을 때 매서추세츠 주의 수자원 정책 소장직을 떠나 하버드 대학 존 F. 케네디 스쿨의 미드커리어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1년 석사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내 일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새로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대로 10년 혹은 15년 더 슬슬 일하다 은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재미없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배스킨은 케네디 스쿨에서 택한 클래스들에서 재정, 국제협상 및 외교 같은 분야를 공부했는데 깜짝 놀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다시 학생이 되어 30대 중후반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무척이나 도전이 되었던 값진 시간들이었다는 그녀는 “테크놀러지를 익히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수업을 따라가느라 애썼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졸업한 그는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기관의 리더십 자리를 찾고 있다.  
하버드 프로그램은 상당히 비싼 투자였다. 배스킨은 학비만 5만달러를 썼는데 그녀가 떠난 직장은 연봉이 10만달러였다. 그녀는 사용하지 않은 휴가를 환불 받아서 한 쿼터의 학비를 냈고, 나머지는 저금과 대출, 그리고 생활비 절약을 통해 조달했다. 

캐시 토마스(63)는 필라델피아 교외에 사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커머셜 뱅킹을 관장하는 수석 부회장으로 일하다가 2년전 은퇴했는데 그때 이후 홀리 불의 회사를 통해 임금이나 보조금을 받으며 일하는 방식으로 갭이어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비행기 요금이 가장 큰 비용이었다는 그녀가 지금까지 일하거나 자원봉사한 곳은 타일랜드의 코끼리 보호지구에서 2주, 남아프리카의 학대당한 소녀들을 위한 셸터에서 6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글쓰기 피정 1주,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오개닉 농장에서 밭일 2주 등이다. 
코끼리 보호지구에서는 일주일에 335달러를 내면 숙식을 제공해주었다. 수돗물과 화장실 등 기본 시설만을 갖춘 곳이었으나 하루 세끼 훌륭한 채식 식사를 대접받았다고 토마스는 전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농장은 성 안에 머물며 숙식을 제공받았다. 
토마스는 은퇴를 빨리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모계로부터 전해오는 조기 사망의 우려가 그녀를 더 많은 인생 경험의 장으로 내몰았다. “어머니 쪽으로 69세 이상 생존한 분이 없었어요.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는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죠. 하루는 동료로부터 자기 아들이 대학 가기 전에 갭이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라고 못할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갭 경험을 계획하는데 6개월을 보냈고 3개월 전에 은퇴 통보를 했다. 지금도 토마스는 새로운 탐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동안은 계속 할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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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은퇴한 후 여러 종류의 갭 경험을 하고 있는 캐시 토마스. 타일랜드의 코끼리 보호소도 그 중 하나다.      <사진 Peggy Martin-McGu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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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데니스 시날은 59세에 갭이어를 갖고 알래스카에서 석공 일을 배웠다.                  
<사진 Brian McCull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