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ㆍ사망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도 최고점을 향해 계속 내달리고 있다.
봉쇄령이 풀리고 최근 1~2주 사이 하루 확진자 규모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주들이 속출한다. 벌써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6만 명이 추가로 사망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공중보건 위기는 날로 악화하고 있으나 “정부 능력과 일관성 있는 국가전략 부족(CNN방송)”이 발목을 잡아 앞날도 어둡기만 하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4일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10월1일까지 약 18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예측한 연구 결과를 전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은 12만1,870명. 3개월 뒤면 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감염병으로 더 세상을 등질 것이란 분석이다. 크리스토퍼 머리 IHME 소장은 “(봉쇄령이 내려졌던) 주들이 개방에 나서고 미국이 대규모 감염병과 씨름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8월 말부터 9월 사이 코로나19 확산세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란 예상도 내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술 더 떠 미주 대륙의 팬데믹이 2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공개했다. 당장 다음주면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 브라질 등 미주 대륙 국가들이 확산세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악화일로인 현실은 비관론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날 미 전역의 신규 확진자 수는 3만8,115명으로 발병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인구의 4분의1(27.4%)이 몰려 사는 캘리포니아(7,149명), 텍사스(5,551명), 플로리다(5,511명) 등 3개 주가 일일 최다 감염을 찍으면서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치료시설이 부족한 병원들도 아우성이다. 텍사스주 휴스턴 시내 병원들은 중환자실의 97%가 이미 찼다. 페터 제이 호테즈 휴스턴 베일러의과대학장은 일간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추세라면 2주 안에 중환자실 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다”며 “정부가 보다 공격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은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지만 연방정부 수장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느긋하다 못해 방역활동에 어깃장만 놓고 있다. 그는 이날도 주말 뉴저지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 소유의 골프클럽 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뉴저지주가 시행키로 한 ‘여행객 격리 제도’를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대통령은 민간인이 아니다 (저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라며 격리가 필요 없다는 궤변도 늘어놨다.
앞서 뉴욕ㆍ뉴저지ㆍ코네티컷주는 25일부터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 9개 주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해 14일 격리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을 적용하면 22일 애리조나주에서 선거 유세를 한 트럼프 대통령은 격리 대상이다. CNN은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공세적인 경제개방을 시도했다가 (코로나19) 상황만 악화시킨 것을 부인하더니, 이제는 아예 미국민의 재난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의 재확산 조짐도 심상치 않다. 23일 육류가공 공장에서 1,553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 된 독일은 발병 인근 지역에 다시 봉쇄령이 내려져 63만명이 자택 대피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