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미국 각 주의 소 도시 한인 상인들은 물건 구입을 뉴욕이나 LA에서 구입 해 장사를 했다. 뉴욕에는 절친한 친구 중대부고 동창 최원용씨가 살고 있는데 그는 이민 초기 비 바람과 눈보라 치는 악명 높은 우범 지대인 할렘과 노상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장사를 해 뉴욕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그후 새로 이민 온 친지와 친구들을 자기네 집에서 생활하게 해 주고 미국에 대한 경험과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 해 주었다. 그 때문에 훗날 뉴욕에 정착 하게 된 사람들이 그의 집을 이민 정거장 이라고 칭하면서 최원용씨를 이민 정거장 역장 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뉴욕에 와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나는 뉴욕에 대한 첫 인상과 살벌한 우범지역 할렘가를 보고 겁이 나고 두려워 뉴욕을 포기하고 소도시에서 살게 됐다.
만약 그때 뉴욕을 선택 했다면 내 인생은 큰 변화와 함께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최원용 친구는 내가 사업차 뉴욕에 가면 공항에서부터 숙식은 물론 자기 사업을 제쳐 놓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제공 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KBS 성우 오혜영씨도 자주 만나 회포를 풀고 한 때 브라질 이민을 신청 해 놓고 브라질어 학원을 다녔던 전상필씨와 변석환씨도 만났고 또 최원용씨를 통해 중대부고 선, 후배들을 만났고 MBC 탤런트였고 방송 드라마 공모 당선 작가 인 정규택씨도 만났다. 그리고 70년대 말 뉴욕에서 “브로드 웨이 클럽” 이란 유흥 업소를 개업한 최무룡 선배와 양훈, 조미령 선배를 만났다. 최무룡 선배는 반가워 하면서 한국에서는 내가 자네 선배였지만 미국에서는 자네가 이민 선배니 잘 보살펴 달라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농을 했다. 최무룡 선배와 양훈 선배는 TV 연속극을 여러편 같이 출연 했던 관계라 미국에서 만나니 꿈만 같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돈을 번 일부 졸부들이 한국에서 만날 수 조차 없었던 인기 스타를 자주 만나다 보니 그들 보다 자신이 더 월등 하다는 이상 심리로 인해 분별없이 술에 취해 “야 무룡아 이리와 한잔해라“하고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쨌든 뉴욕에서 유흥업소를 시작한 최무룡 선배와 코로라도 댄버에서 유흥업소를 시작한 박노식 선배는 사업에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후 휴스턴에 살 때 미국에 있던 최무룡, 박노식 선배와 이순주씨와 송대관씨를 휴스턴 동아일보 개국쇼에 내가 초청해 교포 위안의 밤을 성대하게 개최 한 일이 있다. 어쨌든 연예인들이 미국에서 연예 활동을 하면서 성공 한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거리에서 마당놀이 극을 하던 사람들을 모아 훗날 할리우드 영화예술의 제작 메이커로 승화 시킨 유태인들과 또 미국의 이민 와 성공 한 각 나라 예술인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베트남계 연예인들은 라스베가스 등 각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