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책길에서 만난 하늘이 한 없이 높고 푸르다. 바람은 겨울 바람이지만 햇살은 천상 가을 햇살이다. 마치 늦게 철든 아들같은 가을이 아쉬운 여운을 붙들고 있는 모양새다. 가을의 비움과 겨울의 내려놓음이 어우러지기에 마침 좋은 시절이다. 꽃비처럼 흘러내리는 낙엽 따라, 바람에 휘둘리며 굴러다니는 가랑잎 따라 이런 저런 상념이 피어오른다. 지난 해 이맘때 였나보다. 어느새 한 해가 흘러가버린 일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갈 수 있는, 열려 있는 길이었는데 멈추었던 일이었다. 닦달하듯 움켜잡으려 한 것도 아닌, 순리처럼 다가온 것이었는데 편안하게 놓아버린 영감님이 선택한 길이 지혜로웠다. 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아귀다툼을 해서라도 달려가는 것이 정석인 세상인데 갈 수 있음에도 멈추는 지혜를 우리 할배한테서 배웠다. 갈 수 없는 길이라면 돌아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길이요, 자신만이 오로지 갈 수 있다는 자만과 독단이 앞서면 절대권력으로 붙들겠다는 야망에 메이고 만다. 영감님의 현명한 판단으로 에너지 낭비없이 유유하고 편만한 강줄기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유난히 더 푸르런 하늘을 만날 수 있었고 푸름의 공간에서 새가 되어보기도 하고 맑음을 흠씬흠씬 마셔대기도 했다. 비움의 미묘한 즐거움에도 친숙해져가고 있음에 행복을 따로이 구할 이유가 없는 시간을 맛볼 수 있었다. 비움에 익어가고 비움에 익숙해지며 비움의 미학에 접목되어가고 있음에 감사가 넘친다. 

 

이제 이만큼 먼 길을 걸어왔으매 비우고 버려야할 일만 남았다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자유를 놓치지 않으려한다. 세상은 오늘을 비우면, 얼마나 넉넉하고 여유로워지며 윤택해 지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비움의 진수는 맑은 국화차 한 잔 앞에 놓고도 마음이 따스해 진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움을 위한 묵상의 결국은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깨달음할 수 있어질 것이다. 무의 충만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비움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터. 허허로움을 자만으로 가리려하는 어리석음이 버티고 있는 한 비움의 미학은 누려볼 수 없음이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다. 비움이 선행되어야 맑은 채움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비움 없는 채움은 부패와 낭비만 가져올 뿐이다. 비어 있음의 도도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생의 군형을 바로잡을 수 있음이요 비움의 진리에서 누락된 인생을 회복시켜주는 지름길임도 덤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숨겨져 있다.

 

대개의 인생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 오르기를 즐겨하며 선호한다. 높이 올라야 하고, 가진 것 위에 더 쌓아야하고 가방끈까지 과시할수 있을만큼 힘껏 늘이려 한다. 끼리 끼리 금긋기를 하며 유위부족함을 보잘 것 없음으로 적대시하며 결여와 결핍엔 매몰차게 시선조차 주지않는 것이 작금의 세상풍조이다. 몹씨도 잘난 코배기들 앞에 서면 언뜻 사죄 라도 해야할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영악하게 손에 잡히는대로 움켜잡지 못해서 죄송하고, 너끈히 갑질을 휘두를 수 있도록 사근사근 눈치 삐르게 을이 되어주지 못해서 몸 둘바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을의 자리가 오히려 편만한 인생의 비움에는 지름길 일 수 있음을 손에 쥐어주듯 소상히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을의 자리를 자처하는 것은 비우지 않고는 힘든 자리라서. 이는 무한 창공을 나르는 새를 닮고 싶어서 일게다. 작고 작은 배만 불리면 된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나르면 둥지가 되는 새들의 하루는 욕심이 없다. 해서 새들은 종일을 노래할 수 있나보다. 기쁨으로 깃을 푸드득이고 고독과 자유를 마시고 누린다. 

입 성도 지퍼가 있고 단추가 있어서 나누어진 옷깃을 여며주고 완성을 이루는 것 같이 부족한 점은 덮어주고 허물과 부실함을 어루만져 주다보면 배려의 보람을 아름답게 조율하며 채워갈 수 있는 것인데. 세상만사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불상사를 초래하거나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해내고 만다. 물처럼 흘러야 한다. 물처럼 흐르는 인생은 유복할 수 밖에 없음이다. 물처럼 흐른다는 것은 비 처럼 호젓함을 공유하고 있을뿐 아니라 더러워진 대기를 씻어내리고 오염된 대지를 씻어낸다. 천지를 맑게 쓰다듬어 준다. 물의 흐름은 고이기도하고 흐르기도 하면서 생명을 길러내는 성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흐르는 물의 덕목을 배우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움켜쥔 것에 힘을 풀며, 내 것 아까우면 남의 것도 아까운줄 알아서 나눔에 인색하지 말아서, 비우고 비워내며 새 것으로 채워가며 생의 닻줄도 느슨하게 풀줄 알아야 할 것이다. 생의 언덕길을 지금 껏 올랐으매 내리막을 걷는 즐거움도 누려야하지 않을까. 비움에는 적나라한 정의나 잣대가 없다고는 하지만 비울 줄 아는 생애는 평안을 길어올릴 수 있는 우물로 맑음이 출렁일 것이다. 소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살이에서 얻은 실어증 마저도 감사하며 세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오늘을 비우면 내일도 다음날도 비울 수 있음이라서. 서로의 비움을 내보이며 함께 감사하며 하이파이브를 날리면서 가을을 배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