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담임목사>
깨닫지 못하면 반복됩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왜 나에게는 이런 바보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묵상에 잠겨 봅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불편하고 불행한 일들을 어쩔 수 없는 강력한 운명 탓으로 돌리면 마음은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지 않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데는 반드시 “내게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싫어도 인정해야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분명히 부족하고 모자란 '나' 때문에 일어나는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부주의, 무능, 게으름, 고집, 상처, 우유부단함, 그리고 욕심 같은 불치병들이 계속 앙금처럼 살아 남아서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고 짜증스러운 이 현장을 벗어나면 다 달라질 거야!” 착각입니다. 너무도 무책임한 환상입니다. 마치, 저주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운명같은 기분 나쁜 일이 다시 새로운 현장에서 또 어김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국에서 강아지였는데, 미국에서는 고양이가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간들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삶은 언제나 똑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실망스러운 인생을 보면서 깊은 좌절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거야!”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는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 조차도 삶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압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사각지대를 다른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사각지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뻥 뚫린 전망대일 수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잘 모르겠다면, 주저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불편한 일이 자기에게 운명처럼 반복되는지 혹시 아느냐?”고 겸손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해 줄 것입니다. 정확하게 찍어서 말해 주지 않더라도 부드럽게 돌려서라도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굳이 '카르마(Karma)'같은 타종교의 용어를 빌어다가 쓰지 않더라도 똑같은 인생을 살게 만드는 못된 실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의 운명을 늘 탓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저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데도 이 친구는 인생의 모든 비극을 홀로 지고 걸어가는 한 마리의 어린 양입니다. 지금은 늙은 양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만났는데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십년 전에 말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도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질이 더럽습니다. 아마 저 더러 변했다고 말하면서 마음을 닫아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는 다르게 살 필요가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다시 안 볼 생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놀랍게도 풀이 죽어 다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냐”고 머리를 떨굽니다. 요즘에는 달리 살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특별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운명을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그 생각이 깨지지 않는 한 똑같은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