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40년째... 해외 무형문화재감 아닌가요?"



7일과 8일 제39회 동남부 한인체전이 애틀랜타에서 열린다. 선수단만 해도 900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것이 주최측인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의 얘기다. 선수단 관계자와 응원단 등 부대 인원까지 합치면 이번 주말 적어도 1,500여명의 동남부 지역 한인들이 애틀랜타를 방문한다. 동남부 최대 한인들의 잔치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지난 39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진 동남부 한인체전은 지난해부터는 개막식 전야제 대신 폐막식 행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각자의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일찍 떠나지 않고 그야말로 동남부 한인들의 축제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주최 측의 묘안이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대회부터는 동남부 체전이 차세대의 참여가 늘고 한류문화의 전파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무형문화재를 꼽으라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 동남부 한인 체육대회를 이번주 ‘한국일보가 만난 사람들’로 정했다.


1981년 6개 한인회 축구 1종목으로 시작

동남부 한인체전의 역사는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의 역사다. 1981년 6월 애틀랜타에서는 국제 기능 올림픽이 열렸다. 이때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당시 애틀랜타 총영사관 관할 5개주(조지아, 앨라배마, 노스 및 사우스 캐롤라이나, 테네시)에 있는 한인회가 중심이 돼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가 결성됐다. 그리고 국제 기능 올림픽 위원회 한국 선수단들의 환송 파티가 열렸고 이 파티에는 애틀랜타 한인회와 어거스타, 콜럼버스, 콜럼비아, 버밍햄 그리고 훼잇빌 한인회가 참석했다.

이때 한국 국제 기능 올림픽 위원회는 동포들의 체육 발전을 위해 트로피를 기증했다. 몇 달 뒤인 9월 12일 당시 파티에 참석했던 한인회장들이 모여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를 조직했고 박선근 씨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렇게 탄생한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는 첫 사업으로 국제 기능 올림픽 위원회가 내놓은 트로피로 동남부 지역 축구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렇게 축구 하나로 시작된 것이 바로 내년이면 40회를 맞게 되는 동남부 한인 체전이다. 동남부 한인 체전의 역사가 바로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의 역사인 셈이다. 지금은 플로리다를 제외한 동남부 5개주 24개 한인회 중 매년 평균 12-18개 한인회가 꾸준하게 참여하고 있고 종목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유소년 축구가, 그리고 올해는 장애인 시범경기가 추가됐다. 장애인 경기는 내년부터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


39년간 한인들의 축제의 장으로

오랫동안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와 관계를 맺어 온 한 인사는 동남부 체전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미주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 어디를 둘러 봐도 미주 동남부 한인 체전처럼 40년간 매년 이어온 체육대회는 없다. 규모는 어떤가? 해마다 수백 마일을 때로는 수십명에서 때로는 100명이 넘는 선수단이 차를 타고 이동해 단지 같은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포츠를 통해 함께 어울리고 격려하고 우정을 나눈다. 언뜻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지난 39년간 한해도 빠지지 않고 대회가 열렸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과 가깝다”는 이 관계자의 평가를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올해로 39년을 이어온 동남부 한인체전은 각 지역 한인들의 유대 강화는 물론 체전을 개최하는 지역 한인들이 하나 되는 계기도 됐다. 20여년 전인 1997년 5월 31일 테네시 내쉬빌에서 열린 체전에 대한 당시 주간한국의 기사 일부다. “내쉬빌의 존오버튼 고등학교와 각 보조 경기장에서 동남부 각 지역에서 몰려온 1,000여명의 선수와 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됐다…..<중략>… 개회식을 마친 뒤 태권도 시범이 열렸는데 나이가 어린 딸과 어머니가 함께 대련을 하는 등 가족간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6년 전부터 애틀랜타서 고정 개최

그러나 점차 대회 규모가 커질수록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대회 개최가 점차 힘들어 졌고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만 열리기 된 것. 또 특정 지역의 경우 대회 참가를 위해 선수단이 너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도 간과하기 어려웠다.

결국 2011년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 정기총회에서 당시 김릴리 수석부회장이 체전장소 변경안을 발의했다. “해들 거듭할수록 대회규모가 방대해져 각 한인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시점에 도달한 만큼 주관도 연합회가 직접 하고 특히 선수들의 장거리 이동에 따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5개주의 중심지인 애틀랜타로 장소를 변경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동남부 체전은 2012년 어거스타 대회를 끝으로 이듬해부터는 매년 애틀랜타에서 고정으로 치러지게 됐다. 동남부 한인체전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내년 '불혹'... 문화 축제로 거듭난다

동남부 한인 체전은 내년이면 40회를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에 이르는 셈이다.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뿌리가 깊어졌다. 그런 동남부 한인 체전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깊어진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기 위해서다. 변화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미 언급했듯 유소년 축구가 선을 보이며 외연을 확장했고 올해는 비록 시범종목이지만 장애인 경기가 채택돼 심연을 깊게 했다.

지난해부터 시도한 폐막식 위주의 대회 운영도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에는 전야제 행사와 개막식이 중심을 이뤘다면 지난해부터는 폐막식이 주를 이룬다. 단순한 폐막식이 아닌 동남부 한인들의 한마당 축제로 승화시켰다. K-팝 등 다양한 공연과 볼거리를 통해 특히 1세와 2세의 한바탕 어우러짐 무대가 호평을 받았다. 동남부 한인체전이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문화 축제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과제도 있다.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 소속이 아닌 플로리다 지역의 참가는 여전히 과제고 수년째 애틀랜타 한 곳에서만 고정으로 열리고 있는 것도 이제는 재검토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남부 한인 체전은 동포사회의 자랑거리다. 때문에 연합회 한 인사의 주장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들리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세계 어느 동포사회에도 동남부 한인 체전과 같은 것은 없어요. 왜 한국에는 무형문화재라는 것이 있잖아요. 동남부 한인체전도 해외동포사회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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