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순<조지아텍 재료공학과 교수>
희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인 상황이 같다하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버틸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노력할 수 있지만, 희망이 없다면 모든 것이 부질 없어지는 법이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였던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암울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당시 박사과정 대학원 학생이었던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있었는데, 구로구 독산동의 공장 지역에 있는 한 교회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의 방과후 공부를 보아주는 '공부방' 교사를 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비싼 과외를 할 수는 없고 학원 다니기도 마땅치 않았던 아이들을 모아 공부(주로 수학)도 가르쳐 주고 때때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도 가르쳐 주는, 수학수업인지 음악수업인지 분명하지 않은, 소위 전인격적 융합 (?) 수업을 하는 (그리고 수업 후에는 근처 시장에서 떡볶이도 사주는), 아이들에게 꽤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도 밝고 명랑했다. 아직 초등학생들이 무슨 고민이 있으랴. 뛰놀면 즐겁고 먹으면 기분 좋은 그냥 평범한 아이들에게 가난 그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 보이기도 했다. 비록 막연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바르게 성장하면 소박하게나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시절이었다.
또한 거의 동시에, 이 젊은이는, 역시 가정 형편 상 공부할 기회 없이 구로동 의류업체의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을 공순이라 부르는 공장 근로자들을 가르치는 야학 교사를 했었는데, 검정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라고 격려하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가끔 꼼장어 안주에 소주잔도 함께 기울이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함께 부르는 그런 젊은이였다. “열심히 살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미래에의 희망이 있는 한 죽지 않는 거다” 뻔한 듯한 메세지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들이었다. 빠듯한 생활 속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피곤한, 그러나 건강한 눈빛을 가진 영혼들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한국에서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원까지의 인생을 보낸 이 젊은이가 30대에 미국에 건너온 후, 이제 죠지아텍이라는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닌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는 이제 한국에서 온 수 백명의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부모의 그늘을 떠나 외로움을 친구들과 달래며 공부하는 그들의 눈빛에서도 인생과 진로에 대한 많은 질문과 고민이 엿보인다.
어느덧 이 세상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돌게 되었다. ‘희망고문’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다는 의미를 표현한다. 특히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가운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처지는 ‘희망고문’이라는 말로 그 무게를 표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희망을 보기 원한다. 그것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희망이건 형이상학적인 희망이건, 희망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희망 고문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예 희망을 부여잡은 손을 놓게 되면, 우리는 절망 속에 주저 앉게 되고, 그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을 없애버리는 희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지를 고백하며 끝까지 살아내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