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41)
무분별한 사업
운명의 장난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책장사를 하기 위해 세를 얻은 대방동 방과 점포가 6.25 전란 중 영국군이 마을 사람들과 가족을 실어다 내려 놓고 간 그 곳이었고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음식까지 제공 받았던 바로 그 집이다. 꿈만 같은 인연이다. 책장사에 대한 지식과 시장도 전혀 모르고 겁도 없이 장사를 하겠다고 아버지가 농촌에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싹쓸이 해다 투자를 했다. 서점 상호를 '신신 서점'이라 정하고 주먹구구 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6.25 전쟁 동안 수 많은 역경을 당하면서 살아왔고 운좋게 카나다 군 부대에서 돈도 쉽게 벌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일을 벌린 것이다.
친구 형인 교감 선생이 소개해 준 출판사 사장이 도매상을 소개해 주고 서점과 책장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어서 비로소 책장사에 대한 복잡한 내용을 알게 됐다. 그리고 각 학교에 판매되는 교과서와 참고서는 아무나 팔 수 있는것이 아니고 대형 서점과 출판사 만이 가능한 영역이고 경쟁도 치열하고 문교부와도 관계가 있어 학교 교감 선생의 부탁으로 판매가 가능한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교감 선생만 믿고 사업을 시작했고 또 그 분은 그런 복잡한 문제는 모르고 순수하게 자기 동생을 도와 주려고 한 것이 화가 된 것이다.
어쨌든 교과서와 참고서를 팔려고 했던 계획은 완전히 끝이 났고 허황된 일확천금의 꿈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서점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으나 손님이 없다. 등하교 시간에는 학생들이 넘치도록 오가는데 책을 사지않고 희희낙낙 얄밉게 야속하게 지나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잘돼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다양한 책과 교양 서적과 주간지, 월간지 등을 열심히 구해 놓고 책을 대여 ( 빌려 줌 )까지 했으나 사업은 부진하고 변화가 없다. 대방동 같은 한가한 변두리 서점은 책장사가 적합치 않기 때문이다. 교감 선생만 믿고 허황된 욕심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한 행위가 잘못이고 목적만 중요시 하고 앞과 뒤도 분간치 못한 체 무조건 사업을 강행 한 것이 실패의 원인 이였다.
모든것은 나 때문 이었고 나의 잘못이다. 친구는 나 때문에 책장사를 하게된 피해자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처리했다. 그 때문에 학교도 적당히 오전 수업만 끝내고 전차와 버스로 종로와 을지로로 뛰어 다니며 신간 서적과 월간지. 주간지를 구했다. 대방동에 도착해 책을 다 정리하고 나면 녹초가 돼 공부 할 힘도 없다. 사업은 계속 부진하고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희망은 절망이고 빨간불이다. 게다가 주인이 두 사람이니 재무구조도 문제가 생겼다. 또 책을 계속 구입 해야 되는데 돈이 없다. 서로 얼굴만 보고 한숨만 쉰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 친구 최제갑 군에게 이 난관을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그는 모르겠다며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미납된 투자금이라도 내 놓으라고 해도 자기는 더 이상 투자 할 돈이 없다며 처음부터 책장사에 대한 관심도 없었는데 나 때문에 장사를 시작해 큰 손해를 봤다며 열을 내고 원망하면서 자기는 전에 일하던 미군 부대로 다시 돌아가야 겠다고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모든 원인은 나 때문 이니까 친구를 탓하고 원망 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