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 지연, 혈연에다 동년배라는 이유로, 취미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끼리, 이런저런 차원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무리는 그룹이 되고 정기적인 모임이 형성되고, 영원할 것 처럼 우의를 다지기도 하지만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하는 위험을 안게 되기도한다. 의견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무리와 무리가 나뉘어지고 또 다른 그룹이 결성 되고, 어느 부류에도 섞이지 못하면 외톨이가 되기 십상인 것이 끼리끼리 집단문화의 폐해라 할 수 있겠다. 외톨이가 되면 조직의 구성원안에서는 교제가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편에라도 서야만 외홀로 나약함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라도 발을 들여 놓아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편을 조직하는 위험한 줄타기는 인생들이 살아가는 그 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끼리끼리 울타리를 짓고서도 누구누구가 긴밀해지고 가까워지는 꼴을 목불인견으로 삼는 것 조차도 외로움에서 기인된 것일까. 끼리끼리 속에 안주할 수만 있다면, 그래야만 외롭지 않다는 발상 또한 현대인들의 고독을 부추기는 불상사이다.
인간의 고독이 이기로 치닫게 되면서 고독이 범한 사랑의 구조가 영역을 이탈해 버렸다. 사랑이란 허울로 편을 만들고 무고한 이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일에 가책이 없다. 위험한 울타리에서 위험한 속삭임이 빚은 비극이다. 밀려난 외톨이를 의식하며 혹여나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미리 방어선을 치고 회유하고 거짓 풍문으로 외톨이를 몰아세우려 시도해 보지만 진실은 결코 매도되지 않는다. 금기시 되었기에 범하고 싶은 환상에 사로잡힌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결과 위험한 비밀을 품게 되었던 일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삶의 초석이나 진배없음이다. 삶과 죽음이 뒤섞여버린 섬뜩한 경계를 선택해버린 순간 환상이 던져준 속임수가 치명적이었던 것을 벗은 몸의 수치를 발견하고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과의 위험한 속삭임의 결국이 어떤 종말을 가져왔는가. 위험한 속삭임 끝에 노출돼버린 인생은 작고 주름진 누에고치 같은 몸 속에 응축된 곤충같다. 한적한 시골길을 타박타박 걸어오느라 어느 무리에도 발을 들여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허세라 치부하는 눈길들이 매섭다. 설복이나 설득에는 흔들릴 수 없다 치더라도 굳이 끼리끼리 울타리짓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끼리끼리 집단 행태 또한 저속함의 발로임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까지도.
자신을 더는 키울 수 없다고 상대를 부정해서도 아니되며, 오로지 나만 커 보인다해서 상대를 마음껏 헤집고 다녀서도 안될 일이다. 그리하면 않되지 않느냐고 아름다운 충고를 전해야 하는데도 구경꾼들은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 있는 세상이다. 고독감에서 누수된 위험한 속삭임이 빚어낸 무대에는 불안한 표정의 삐에로만 조명을 받고있다. 그의 손짓은 위험할 수 밖에 없음이요 슬픈 몸짓이 되기 십상이다. 어린 친구들 끼리도 편을 만들고 누군가를 따돌림하는 치졸함의 그릇됨을 알고있는 터인데 어른들이 무리를 짓는 행위는 조악한 감성의 편파적인 판단으로 위험 수위를 오가는 추태를 지켜보노라면 역겹기까지 하다. 끼리끼리 무리짓는 집단 문화는 참황일 수도 있거니와 거기에 편먹기까지 곁들여 지면 점입가경이 된다. 인생이라는 무대를 지나는 동안, 구경꾼들을 더 좋은 볼거리로 유도하려는 눈빛들이 총총하니 반짝이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노년에 들어선 어른들이 무리짓고 밀려다니는 즐거움이 위험한 여로를 연출해내지는 않을찌 찬찬히 돌아볼 일이다. 희미한 안타까움이 초롱불 같은 빛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상대를 조금만 불편하다거나,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밀어내는 용맹을 부린다. 하지만 불편한 군상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삶이고자 버티는 열정을 지닌 사람 또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옆모습이다.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면 위험한 속삭임의 결박을 먼저 끊어야할 것이다.
관계의 덤불에서 얻은 다짐이다. 누구에게서도 완벽한 이해심을 바라지 말아서 사랑이라는 차꼬를 채우지 말자는 것이다. 그 누구라서 완벽하게 나를 이해하랴. 사람으로 부터는 영원한 위안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서 어떠한 상처를 받더래도 조금만 아파하고, 언행으로도 드러내지 않으며 혼자 삭혀내며, 겸손의 자리에서 순명과 인내를 익혀가리라. 빛나고 두드러진 멋진 인생들도 자연의 순리에 잠깐 스치는 여로인 것을. 한적한 시골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이름 모를 순례자로, 숲을 사랑할 줄 알고 풀도 나무도 사랑해서, 결국은 심약하고 나약한 자를 사랑할 줄아는 여린 사랑의 소유자들. 그 중 한 사람으로 살아지고 싶은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다. 사랑은 결코 과장되거나 현실 저 만큼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사랑의 출발과 맺음은 자그마한 베풂의 시작이요 변질되지 않는 신의라서 인생 가운데서도 높고 웅대한 사랑을 작은 씨앗으로 응축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랑을 기대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관계의 덤불을 헤쳐가려 한다. 어설픈 영어를 썼어도 부끄럽지 않았었는데, 웬만한 인종차별 쯤은 그럴수도 있지를 웅얼거리며 벅찬 이민자의 삶을 견디었는데, 같은 뿌리를 둔 동족의 끼리끼리가 왜이리 시리고 아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