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Nouwen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작은 예수가 된다는 것을 인간의 말로는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신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북미의 어린이 교육에서 그 의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북미의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P.T.S.라는 매너를 배웁니다. P.T.S.는 Please의 'P'와 Thank you의 'T' 그리고 Sorry의 'S'를 합친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오아시스(おあしす) 운동을 전개해 큰 호응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인사'인 오하이오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실례했습니다'의 시쯔레이 시마시타(しつれいしました). '죄송합니다'의 스미마셍 데시따(すみません)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인성교육 캠페인입니다. 친절한 행동은 간단한 인사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유태인들은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해석함으로 친절이라는 지혜를 망각한 인간들의 죄를 극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친절이 단순히 교양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의무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소돔은 인근에 있는 도시인 고모라와 함께 사해의 남쪽 해안에 접해있는 곳이었습니다. 소돔성의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죄의 수위가 더 이상 그냥 두고 보시기에 최악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들을 롯과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소돔성에 보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소돔 성(城) 사람들 보기에 아주 잘 생긴 남자들로 보였는지라 그들은 죄의 본성을 드러내어 마침내 하나님의 저주받은 도시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이 창세기 19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유대인들은 이야기로 더욱 교훈합니다.
어느 날 소돔으로 한 나그네가 찾아와서는 이 도시의 금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도둑이 들어 그가 지키는 금화 50닢을 훔쳐가 버렸습니다. 이 나그네는 도둑맞은 금화를 변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딸과 함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소돔의 백성들은 사실 죄 많은 인간들로, 오랫동안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잔악한 일들을 저질러 왔습니다. 이 나그네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소돔의 시민 중 한 사람이 그 금화를 훔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로 팔려간 딸 중 하나가 옛 친구를 만나 먹을 것이 없다고 애걸하자 친절한 친구는 그녀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돔 시민들은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준 친절한 친구를 사형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 처형 방법도 잔인해서, 발가벗긴 온 몸에다 꿀을 바른 다음 벌집 아래 매달아 수많은 벌들이 쏘아 죽이게 하는 잔인한 방법을 썼던 것입니다. 그 결과, 친절한 인간을 죽인 도시는 다음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친절이란 크리스천의 자기관리 중 으뜸의 항목입니다. 그래서 Kindness는 Kind에서 시작된 '종(種)'의 의미였고 그 의미가 결국 사람을 구분하는 척도로서의 '친절'을 낳았습니다. '친절'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할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예리한 첨예봉(尖銳鋒)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7:12에서 천국시민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요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친절은 유황불의 심판도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친절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32에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서 엄청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롯의 처는 롯과 함께 갑자기 자기 집을 방문한 천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녀만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소금기둥이 되었을까요? 친절은 형식적인 겉치레가 아닙니다. 이 친절은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친절한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고 하셨습니다(창19:17). 따라서, 친절은 결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친절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베푸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나의 작은 친절이 2000년 전 말 안 듣는 제자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조건 없이 보듬어 주셨던 주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친절은 헨리 나우웬이 말한 작은 예수가 되는 길입니다. 이 작은 예수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바로 P.T.S. 예수꾼 교회입니다. Please, Thank you, Sorry. 즉, P.T.S. 예수꾼 교회의 본질은 주님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친절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Golden Rul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