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이 "디오게네스여! 당신은 어찌하여 환한데 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십니까?"라고 묻자, "사람을 찾고 있소"라고 대답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람을 찾은 이유는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 즉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뜻으로, 참 되고, 의롭고, 진실되고, 영원한 사람을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극단적 개인주의(Extreme inpidualism)와 냉소주의(Cynicism)가 팽배한 21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과연 이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디오게네스가 일찍이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참으로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참 하나님, 참 포도나무, 참 빛, 참 된 양식, 참 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1:9; 6:55; 14:6; 15:1; 18:37).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진리의 요건을 모두 갖추셨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왕 중의 왕,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요건을 충족시킬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영적 대 부흥"을 일으키실 분도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디오게네스가 광명의 천지에 불을 켜고 진리를 지키는 참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요건을 갖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영웅, 시대의 지도자 모세입니다. 출33:7-11에 보면, 부흥의 본질을 모세는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영국의 대설교가, Martyn Lloyd-Jones 는 "부흥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한 사람으로 부터 일어난다. 부흥은 "한 사람,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한 그룹"으로부터 시작한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대 부흥의 지도자, 모세는 부흥의 회막을 이렇게 쳤습니다. 진 중앙에서 이 장막을 걷어내어 진 밖에 멀리 떨어진 곳에 쳤습니다. 기독교의 오랜 이야기 속에 나타난 '성령의 부흥의 역사'를 읽어볼 때, 위대한 부흥이 일어날 때, "제일 먼저 나타난 일"은 "한 사람"이나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 갑자기 이러한 점을 느끼고, 자기 짐이 너무 무거워 그것에 대해서 뭔가 시작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기에서부터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읽어 보십시오! 미국의 영적대부흥의 역사를 일궈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70가지 결심문"을 읽어보십시오. 그 중에 64번째 결심문을 소개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64.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 -- 바울 사도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시편 기자가 시편 119:20절에서 말하는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이것들을 항상 지키도록 하자. 또한 나의 소원을 아뢰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열심을 반복적으로 내는 것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자. 1723년 7월 23일, 8월 10일"

스위스의 쯔빙글리,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 독일의 마틴 루터, 스위스의 존 캘빈이 일으킨 개혁교회의 종교개혁사를 읽어보십시오. 이 얼마나 놀라운 운동입니까? 그 기원이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의 전조(前兆, herald)들이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성령역사에 의한 마음의 부담"입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뭔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영적대각성운동의 선구자, 모세는 회막을 걷어서 진 바깥으로 옮겨버린 것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5:1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유대의 멸망은 결정적으로 의인 한 사람, 오직 한 사람의 의인이 없으므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이 아닙니다. 성실과 정직을 갖춘 "의인 한 사람"입니다. 이 오직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창 18:23-32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예고했을 때, 아브라함은 "성실과 정직"을 갖춘 의인이 있다면 하고 하나님께 과감하게 Deal을 하기 시작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흔쾌히 수락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서 의인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에스겔 선지서 16:48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부흥의 본질은 "의"입니다. 의가 없는 부흥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악인의 모습입니다. 의가 없는 부흥은 "성실과 정직"이 부재한 지옥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흥을 위해 온 몸과 온 맘을 다한 다윗은 시편 25:21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예수님은 스스로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말씀하십니다(요18:37)

하나님은 "부흥"을 원하십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직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실과 정직"을 겸비한 자를 찾으십니다. 성실과 정직은 예수님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인입니다. 바로 이 의인 한 사람을 통하여 부흥을 일으키기를 원하십니다. 유다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최신의 무기", "신예의 부대"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부흥에 대한 "갈증, 긍정, 열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흥의 사람"입니다. "부활예수의 의"가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