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서리 /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여 /  ‘옛마을을 지나며’ 김남조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가을이 기울어가고 있다. 뜰에 심어둔 감나무가 가지가 휘도록 감이 열렸다며 감을 가져가라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비로소 가을임을 연연히 느끼게 해주었다.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농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다양한 채소들과 유실수들을 가꾸고 계시는 지인께선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서 있거나 계절이 바뀔때나 매번 의미를 부여하시며 우리를 불러들이신다. 시니어 아파트로 옮기면서 텃밭을 일구던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노인네들에게 텃밭 재미를 나누어 주시려고 사랑으로 불러주신다. 매번 감사를 전하지만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어 고마우시다며 도리어 감사를 돌려주신다. 어느 새 감 한바구니를 실어놓으셨다. 어제는 부근 공원을 산책하자는 전화를 받고 낙엽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가을을 풍성하게 담을 수 있는 기쁨도 무색하게 상자 가득 담으신 감을 안겨주신다. 지난 주일엔 곱게 익은 감을 가방 가득 담아 주시는 지인도 계셨다. 감빛으로 물든 정을 듬뿍 받아 마음도 다사로운 감빛으로 물들어 간다. 

유년시절의 내 어머니께선 떫은 땡감을 달콤한 홍시로 만드시는 재주를 가지셨다. 온돌에 묻어두시기도 하셨고, 고방에 쌓아둔 짚더미 속에 감을 넣어두시기도 하셨는데 달콤하고 보드라운 맛이 입 속을 맴돌아 고방을 기웃거리고하고 온돌에 묻어둔 덜익은 감을 한 입 배어물다 퉤퉤거렸던 추억들이 노구를 잔잔히 흔든다. 감이 불러모으는 추억들은 우리를 더 없이 소박하게만든다. 감 속엔 수필도 담겨있고 소설도 담겨있다. 싯귀도 곰살스레 숨겨져있다. 꿈과 부담없는 낭만이 숨쉬고 노년의 기억을 일구어낼 수 있는 초월적인 작은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 이젠 감나무를 심을 수 있는 지경이 되지 못해 딸내 집 뒷뜰에 감나무를 심으라고 은근히 종용하듯 권해 보려한다. 하늘이 티 없이 맑고 점점 더 깊어가고 있는 가을이다. 감은 가을이 내놓은 소중한 산물의 하나로 삶을 헤쳐나가느라 영육이 매마를 즈음, 숲 속의 옹달샘 같이 목마름을 축여주기 위해 추억을 더듬게 해주는 은택을 나누어 주고 있다. 기다림 끝에 부드럽고 달콤한 경지를 우려내려 온전히 드러낸 몸으로 늦가을에 당도한 고향 먹거리 홍시감이 이민자들에게 반가운 손님으로 등장했다.

아득한 고향의 맛을 그리는 마음으로 뜰에 심어놓은 감나무가 고향내음을 연육시키며 향수를 달랠 수 있도록 가스랑거리는 가슴에 안겨온 것이다. 잘 익은 감을 나누며 나눔받으며 이방에서의 외로움들을 달래고 있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인생들의 서두름과 허둥댐이 도드라져 보임을 숨길 수 없음이다. 결실의 보람을 거두느라 그러한가 보다. 온전하게 오직 한 길로 부단히 걸어가는 자연의 조율을 인지하면서도 무언가에 떠밀리듯 종종거리다 가을의 내려놓음이 엿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히 머물고 계절의 열정과 순수가 노심을 감싸며 호젓하게 휘감긴다. 홍시의 수줍은 속살이 어쩌면 이리도 부드럽고 고울까. 고운 속살로 익어가기까지 뭇서리와 따가운 햇살과 모진 비바람을 견딘 인고의 효익이리라. 진홍의 햇살을 과육 속으로 끌어 모은 것일게다. 감 꽃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오두마니 매달린체 하늘을 우러르며 고이 봄날을 보내고 뜨거운 여름날을 품으며 알알이 하늘의 영긂을 품으며 곰실곰실 익어가는 홍시의 심연을 누가 눈치챘을까. 

농익은 고운 결실을 맺기까지 떫디 떫은 시간을 감수하며 아주 조금씩 눈에 띠지 않을 만큼 먼 길을 돌아오듯, 서슬 퍼렇듯 딱딱하기 이를데 없던 푸른 감의 면모를 쉼 없이 익어감으로 이루어온 흔적들로 가득하다. 오롯이 자신을 지켜낸 결실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 헛된 욕망이나 위선이 잠재워지고 아집으로 두른 위세들이 빠져 나간 말랑말랑하고 쪼글쪼글한 홍시가 풍상을 견디며 귀한 삶을 살아낸 곱게 늙으신 노인이 연상되기도 한다. 감으로 인한 감사((感謝)의 마음을 감사(柑謝)인사로 분주했던 감사의 계절이 더더욱 넉넉하게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