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천하서 권익 묵살
출산 전후 지상근무 허용
유급 출산휴가도 요구


민항기에 탑승하면 타임캡슐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종사는 주로 남성이고 승무원은 대부분 여성이다. 마치 60년대처럼 성에 따른 역할구분이 뚜렷하다. 
델타항공의 여성 조종사가 최근 남성 동료들로 가득 찬 파일럿 노조모임에서 유니폼 상의를 풀어헤치고 브레스트 펌프(유축기) 사용법 시범을 보인 것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모유짜기 시범은 ‘남성천하’인 노조가 새로 엄마가 된 민항기 여성 조종사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현재 민항기 여성 파일럿의 수는 15만9,000명에 달하는 미국 전체 공인 조종사 인구의 4%를 차지하는데 불과하다. 이처럼 숫자가 적다보니 거의 남성일색인 파일럿 노조가 출산과 육아와 관련한 ‘소수의 문제’에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기습 시위’가 델타항공 여조종사의 브레스트 펌핑 시범이었다. 
의료개혁법인 오바마케어는 고용주로 하여금 출산한 여직원에게 브레스트 펌핑 등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상 3만 피트 상공에서 근무하는 여성 조종사는 이 조항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파일럿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항공기 안전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똘똘 뭉친 델타 항공사의 여성조종사 그룹은 노조를 향해 사측에 유급 출산휴가를 건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가하면 프런티어 에어라인의 여성 조종사 4명은 출산을 전후한 일시적 지상 근무 허용 요구를 거부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요구사항은 다르지만 델타와 프런티어의 ‘엄마 조종사’들은 비행 도중 모유를 짜기 위해 조종실을 20분간 비우는 일을 피하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분은 브레스트 펌핑에 걸리는 평균 시간이다. 
민항기 여성 조종사의 수는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민항기를 조종한 첫 번째 여성 파일럿은 보니 티부르지 카푸토(67)였다. 
아메리칸 항공이 1973년 민항사상 처음으로 보니에게 여객기 조종간을 맡기자 LA타임스는 “치마씨가 항공기를 조종한다”고 대서특필했다. 
항공사에서 18년간 재직했던 카푸토 기장은 “당시만 해도 여성 조종사가 전무했기 때문에 출산휴가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항공사는 완전한 남성천하였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요 항공사들은 출산휴가라는 난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노조와의 협상을 통한 단체합의를 바탕으로 조종사 처우에 관한 정책을 수립한다. 하지만 노조에서 여성 조종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에 출산휴가와 모유수유 정책이 노조의 중요 아젠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노조 내부의 반발기류도 만만치 않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로컬 유니언 지도자는 여성 회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출산은 개인적 선택인데 왜 우리에게 공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출산휴가와 모유수유 정책은 파일럿 노조의 중요 아젠다로 채택되기 어려운 이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타의 여성 조종사들은 여전히 노조원들의 과반수가 그들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중요 항공사의 여성 조종사는 계약에 따라 출산예정일을 8주에서 14주 남긴 시점부터 비행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델타는 조종사 노조의 압박에 따라 주치의사의 승인을 전제로 만삭까지 임신부 파일럿의 비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델타의 모건 두란트 대변인은 일단 비행을 중단한 후 여성 조종사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모아둔 병가를 한꺼번에 찾아 쓰거나 장애수당을 신청하는 방법으로 임금 손실의 일부를 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항공사 측은 일반적으로 유급휴가나 모유를 먹이는 엄마를 위한 대체 지상근무를 제공하지 않는다. 
유나이티드 항공과 알래스카 항공은 여성 조종사에게 최고 1년간의 무급휴가를 준다. 델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급 출산휴가가 없었으나 최근 노조와의 계약에서 1년 무급휴가 조항을 삽입했다. 
프런티어의 조종사들이 제안한 일시적 지상근무는 회사 본부 인근에 거주하는 파일럿에게는 유익하지만 전체 조종사 5명당 1명이 직장에서 760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사실상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프런티어 항공사 조종사인 부기장 브랜디 베크(41)는 비행 중 아기에게 먹일 젖을 짜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도달해 자동비행모드로 전환되면 기장에게 정식으로 휴식을 요청해야 한다. 프런티어 규정에 따라 조종석에 혼자 남은 기장은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와 동시에 기내 승무원은 베크가 모유를 짜는 공간으로 사용할 화장실 앞에 음료수 카트를 끌어다 놓아 승객들의 접근을 차단한 후 베크 대신 조종석으로 들어가야 한다. 조종석에는 언제나 최소한 2인이 있어야 한다는 비행규정 때문이다. 
이런 준비작업을 모두 마친 후에야 베크는 화장실로 들어가 20분간 젖을 짤 수 있다. 
한편 프런티어 항공의 경영진은 조종사 중 한 명이 조종석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전문제가 대두된다며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방항공청(FAA)은 비행 중 브레스트 펌핑에 관한 공식적인 룰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앨리슨 듀케트 대변인은 “조종사가 조종석을 20분간 비우는 것은 어떤 경우에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유를 하는 엄마는 3~4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젖이 불어 심한 가슴 통증이 생기고 감염우려까지 따라온다. 
델타의 일부 여성 조종사들은 어쩔 수 없이 조종석에서 젖을 짜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축기를 가동하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낡은 기종의 경우 플러그가 조종석에만 있기 때문이다. 
델타의 여성 조종사들은 신생아에게 모유를 수유하기 위한 6개월간의 유급 출산휴가와 최고 2년간의 무급휴가를 원한다. 
조종사들의 기본급은 연 20만 달러이고 경력이 쌓일수록 올라간다. 그러나 젊은 파일럿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비행교관, 농약살포기나 출퇴근용 소형 전세기 조종 등을 통해 비행시간을 축적해야 민항기 조종사가 될 수 있다. 빨라야 30대 초반에서야 주요 민항기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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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항공사의 파일럿이자 부기장인 브랜디 베크가 덴버의 집에서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Theo Stroomer/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