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의 고통 덜어줘야 하는데
   죽음과 삶의 무작위성 목격하며
“신의 섭리란 게 과연 있는가”회의
   전역 후 하나님·종교의 관점 변해


매튜 윌리엄스는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전 신학교를 졸업했고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하나님이 고통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일시적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연이어 군목으로 복무하면서 윌리엄스는‘시험’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1년은 아마겟돈의 시간이었다. 군목인 그는 시체안치소에서‘친구들’의 주검이 담긴 바디백(body bag)을 잠그며 시간을 보냈다. 윌리엄스 목사가 주례를 선 전우들의 결혼은 잇달아 깨어졌다. 죽음의 공포 역시 그를 괴롭혔다. 총탄이 날아가고 바로 눈 앞에서 박격포탄이 터질 때마다 윌리엄스 목사는  자신이 비무장 상태라는 사실에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그는 현역도 아니고 기독교연합교회의 목사도 아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지닌 기타 연주자일 뿐이다. 
하나님과 종교, 고통에 대한 그의 관점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 
전국을 떠돌며 음악을 연주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목회를 대신하는 윌리엄스는 “인간의 고통과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긴 큰 그림(grand design) 따위는 없으며 세상은 그저 보이는 그대로”라고 덧붙였다. 
아마도 전쟁의 가장 거친 부분은 죽음과 고통, 삶의 무작위성일 것이고 군목의 임무는 이들에게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군에는 ‘챕스’(Chaps)로 통하는 약 5,000명의 남녀군목이 하루 24시간 장병들의 상담에 응한다. 
장병들은 엄격한 비밀보장의 우산 아래 자신이 저지른 어둡고 사악한 행동, 끝없는 회의감과 공포, 심지어 군 경력을 끝장낼 수 있는 자살충동에 이르기까지 혼자 지고가기 힘든 마음의 짐을 군목 앞에 마구잡이로 부려놓는다.   
하지만 군목도 인간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라해서 외상후 스트레스(PTS)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존 웨더리 목사는 군목으로 2001년과 2006년 보스니아와 이라크에서 복무하면서 군목들 역시 트라우마에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반 전투병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겁에 질리고, 두려움을 숨기려들다가 점차 무뎌져가고, 결국 무너진다. 수시로 악몽에 시달리고 전쟁에 관한 뉴스를 듣다가 느닷없이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한다.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후 알렉산드리아의 세인트 막스 에스피코펄처치의 교구목사로 시무 중인 웨더리는 “군목으로 복무하며 공포가 무엇인지 체험했다”며 “지금도 과거의 경험이 현재형으로 엄습할 때마다 목청껏 시편 23편을 암송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휘관들은 마음이 허약한 군목을 원치 않는다. 공군 군목으로 시무하다 은퇴한 앤소니 팬트리츠(53)는 “하나님의 전사인 군목은 부서져서는 안 되는 존재”라며 “그가 무너지면 병사들은 목자를 잃은 양떼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흩어지고 깨진다”고 말했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인 팬트리츠의 일기장에는 이라크에서 보낸 추수감사절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저항군들의 박격포 공격으로 3명의 이라크 경비원이 타버린 고기처럼 시커먼 숯덩이가 됐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한동안 신앙을 잃었다. 믿음은 다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감각과 섬광 같은 플래시백, 뼈저린 소외감도 그대로였다.     
그는 최근 일기장에 “아직도 내 안의 조그만 목소리가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자주 묻는다”며 “너무 외롭다. 사람들로부터, 또한 나 스스로에게서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다”고 고백했다. 
‘잊혀진 전쟁포로’를 자처하는 팬트리츠는 그러나 “시간의 바늘을 돌릴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로 가고, 거기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걸렸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과거의 체험을 이용해 트라우마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내버리시는 법이 없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가끔씩 하나님은 더 나은 목자를 만들기 위해 의도된 시련을 주신다”는 그는 “나의 경우 부상을 당했고, 그 상처를 사용해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치유한다”며 “단련을 통해 더 나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들과 간병인들, 그리고 상당수의 군목들에게 7일간의 피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오퍼레이션 토히두’의 운영책임자 매리 닐 비텐 해군 정신상담의는 “군목이란 병사들이 언제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들의 문제를 쏟아버리는 쓰레기장과 같은 존재”라고 풀이했다. 
그는 “신학훈련을 통해 군목은 고통의 실존을 받아들일 충분한 이론적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지 몰라도 전쟁의 야만성을 정면으로 대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비텐은 “피정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이라면 전쟁을 겪은 후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준다”며 “군목들에게 ‘트라우마는 고통의 부류에 속한 것일 뿐 정신질환이 아니다’고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병사들은 군목을 ‘행운의 부적’으로 간주한다. 전투지역으로 향할 때 그들은 군목이 탑승한 차량이나 군용기를 타려 든다. 군목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종교적인 신념, 혹은 미신 때문이다.    
군목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죄식자’(sin-eater)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윌리엄스는 “이른 아침 유족에게 사망통고를 할 때, 누군가로부터 남편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말을 듣는 오후에, 가까운 사람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 저녁에 나는 분명 죄식자였다”며 “끊임없는 고통이 현실이 되는 삶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외상후스트레스에 스스로 대처하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해방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신실한 삶을 산다”는 그는 “과거에는 군의 기본방침을 고수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굴레어서 자유롭다”며 “믿음 안에서 내가 섬겼던, 혹은 섬기지 않았던 모든 장병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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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스’(Chaps)로 통하는 군목도 인간이다. 이들 역시 전쟁의 상흔인 외상후스트레스(PTS)에서 자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