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쌓고 취업 유리”
항공료·생활비 부담 커도
무보수직에 전국서 몰려




도미니크 피콕은 전국아메리칸인디언의회(NCAI)의 무급 하계 인턴으로 채용됐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서 워싱턴DC로 날아가는데 필요한 항공요금부터 살펴보았다. 
항공료는 그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그는 항공기 대신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올라타 44시간을 달린 끝에 워싱턴DC에 도착했다. 
무보수 인턴의 워싱턴 생활은 고달팠다. 하루 8시간씩 NCAI 사무실에 앉아 인디언 부족의 권익보장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법안의 초안을 훑어본 후 그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호텔로 이동해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식당 테이블의 식기를 치웠다. 
주당 6일간 매일 최소 60시간에서 75시간을 이렇듯 빡세게 일하고 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고 만다. 
일요일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숙소인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기숙사에서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DC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아코마 푸에블로 부족의 일원이자 뉴멕시코대학 4학년생인 피콕은 “살인적 스케줄이지만 내가 원하던 바”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턴십을 성공적으로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워싱턴DC는 매년 여름마다 피콕과 같은 수 천 명의 인턴들로 붐빈다. 
민간 기업과 달리 정부와 비영리단체들은 인턴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워싱턴DC는 인턴들을 위한 200여 개의 연방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보수가 따르는 포지션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해마다 수천 명의 인턴을 고용하는 연방의회 역시 이들 중 극소수에게만 급료를 지급한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100명에 가까운 인턴 가운데 유급 인턴사원은 단 한명도 없다. 
이 지역의 비영리단체들은 정부기관보다 더 많은 인턴을 고용한다. 한마디로 워싱턴DC는 대부분이 무급인 하계 인턴십의 메카다. 
지난해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기업들 역시 임금 대신 학점을 취득하려는 인턴들을 무료로 고용할 수 있다. 
고용주는 돈 한푼 안 들인 채 고급인력을 부릴 수 있는 기회를 반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로스 아이젠브레이 부사장은 무급 인턴십 프로그램이 엔트리 레벨(말단 초임수준)에 속한 근로자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DC의 신규 취업희망자들은 무보수로 일하는 인턴과 말단직 일자리를 놓고 심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낮은 보수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의 정치 1번지인 워싱턴DC에서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인턴십 기회가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부유층 학생들에게 집중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피콕처럼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혼자 힘으로 워싱턴에서 여름을 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고등교육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의 의뢰로 실시된 2012년 서베이에서 인력관리 전문가와 기업 중역들은 인턴십을 신규 대학졸업자 채용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의 사회과학연구소인 브루킹스 인스티튜션의 조앤나 베네이터는 무급 인턴십은 능력이 부족한 부유층 자녀들이 상위소득계층에 그대로 남아있도록 도와주는 추락방지용 ‘유리 바닥’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저소득층 학생들의 경제적 계층이동을 가로막는 역할까지 담당한다고 주장했다. 
베네이터는 “인턴들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LA와 워싱턴DC의 생활비는 저소득 학생들은 물론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지만 이곳에서의 무급 인턴십이 커리어를 쌓는데 반드시 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미산학협회의 서베이는 유급 인턴 출신의 초봉이 무급 인턴에 비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턴십을 마친 후 정식으로 채용된 유급 인턴은 무급 인턴에 비해 높은 초봉을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서베이에 따르면 유급 연방 인턴의 거의 60%는 인턴십을 마친 후 정식 채용 제안을 받지만 무급 인턴은 40%만이 동일한 오퍼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DC에서 무료로 땀을 흘리는 인턴들은 부모가 약간만 지원을 해주어도 큰 보탬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워싱턴DC의 인턴들은 바와 클럽에서 특별대우를 받는다. 입장료가 면제되고 술값도 할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면 적지 않은 쌈짓돈이 깨진다. 피콕 같은 ‘흙수저’에게는 언감생심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피콕은 주당 70시간 일해야 하는 고달픈 인턴십이지만 무사히 무급 수습직을 끝내면 학부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지원할 때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가을에도 워싱턴DC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그는 무급으로 장시간 고생을 하더라도 다시 NCA에서 일하고 싶었다며 “나로선 소원을 이룬 셈”이라고 만족해했다. 
그는 “죽어라 노력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며 “우리 부족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정도의 수고야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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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인턴인 도미니크 피콕이 전국아메리칸인디언의회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컴퓨터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인용문이 잔뜩 붙어 있다.
<알 드래고>